73년만에 귀환하는 호국영웅

방송언론소비자주권연대 승인 2024.11.06 14:34 의견 0


6·25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다 18세 꽃다운 나이에 전사한 호국영웅의 신원이 지난 10월 31일 확인된 후, 오늘(11월 6일) 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형의 유해라도 마주하고자 유전자 시료 채취 후 기다렸던 동생은 신원확인 3개월을 앞두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단장 이근원)은 2018년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덕갈고개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6·25전쟁 당시 ‘횡성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김수덕 일병으로 확인했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39명으로 늘었다.

고인의 신원확인은 국군 장병들에 의한 유해발굴, 병적자료 검증을 통한 기동탐문,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채취 등 다양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유단 전문 발굴병력이 전사연구와 참전용사 증언을 토대로 2018년 5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덕갈고개 일대에서 발굴하던 중 경사면에서 오른쪽 팔뼈를 최초 식별하였고, 이어서 고인의 오른쪽 정강이뼈와 종아리뼈를 추가로 수습했다.

이후 2020년 2월, 국유단 기동탐문 간 고인의 남동생 김종덕(1944년생) 씨를 찾아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였으나, 당시 유전자분석 결과로는 전사자와 유가족 간의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

국유단은 이에 멈추지 않고 과거 유전자 분석이 이뤄진 유해 중에서도 특히 전사자가 다수 발굴된 지역의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를 더 정확한 최신 기술로 재분석해 올해 10월 형제 관계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사이 형의 유해라도 찾기를 기다려온 김종덕 씨는 반가운 소식을 듣지 못하고 올해 8월, 신원확인 3개월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고인은 국군 제8사단 소속으로, 여러 전투를 거친 후 ‘횡성 전투’(1951.2.5.~2.12.)에 참전 중 전사했다.

고인은 1932년 8월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4남 5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고인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총명하여 집안 농사를 도우며 학업에 매진해 청도 모계중학교를 다녔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자 나라를 지키기 위해 1950년 9월 대구의 제1훈련소에 자원입대했다. 유가족 증언에 따르면 입대 전 고인은 “어머니, 저는 이제 입대하면 다시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라고 눈물로 인사하며 고향을 떠났다.

이후 고인은 국군 제8사단에 배치되어 수많은 전투에 참전하던 중 ‘횡성 전투’에서 중공군과 맞서 싸우다 1951년 2월 7일 열여덟 살의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횡성 전투는 1951년 2월 중공군의 제4차 공세 때 횡성군 일대에서 전개된 전투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오늘(11월 6일)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유가족의 자택(전사자 생가)에서 열린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소식에 유가족 대표인 막내동생 김종길(1948년생) 씨는 “어머니께서 생전에 수덕 형님이 북한에 살아계실 거라고는 말씀하셨는데, 강원도 횡성에서 전사하셨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 형제가 모두 형님을 찾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종덕 형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 이 기쁜 날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라며 “늦게라도 형님의 유해를 찾아주신 국가와 국방부에 감사드리며, 이제라도 형님을 따뜻한 국립묘지에 안장하여 정중히 모시고 싶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을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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